오래된 미래

나는 시골 출신이다. 행정구역상 엄연히 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집 옥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대부분은 논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에서 태어났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벼의 생장에 방해될 소지가 있기에 생장 기간에는 가로등을 모두 끄는 동네이다. 소도시 최외곽 변두리 지역이었던 내 고향의 모습은 다른 소도시들의 변두리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 환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다른 지역과는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학교의 존재.

약 30여년 정도 전,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 서울에 본교를 가지고 있는 대학교의 지방 캠퍼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다른 시골과 별 차이가 없었던 마을은 갑자기 들어온 거대한 대학교의 영향으로 도로가 포장되고, 시내버스의 운행 간격이 줄어드는 등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한다. 또한 시내로 출퇴근을 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의 직업군이었던 "농민"에도 적잖게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다시말해서, 당시의 동네 젊은 층에게 있어 농사 이외의 일자리가 생겼던 것이다. 다만 동네의 양적 팽창에는 한계가 명확히 그어져 있었는데, 그 이유는 동네앞 벌판에 펼쳐진 평야가 무슨 개발제한구역에 걸려있어서 토지의 용도변경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논이 존재 →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께서 생계를 계속 꾸리는 게 가능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집들이 개축을 통하여 자취-하숙을 부업삼아 추가적으로 하는 것 정도와 약간의 외부인 유입 정도의 변화가 있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의 주 산업은 1차산업이었다. 그것은 우리 동네도, 그리고 대학교를 끼고 반대편에 있던 동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반대편 동네는 대학교 설립 후, 대학 외곽 경계를 둘러싸고 새로 생성된 이른바 "신촌(新村)"마을이었다. 마을이라고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논과 밭 사이에 띄엄띄엄 집이 있던 곳에 대학생들을 위한 임대업을 목표로 외지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논과 밭이 아니어서 개발제한에 걸리지 않던 작은 언덕을 끼고 여러 집이 들어오더니 하나의 촌을 구성하였다. 원래부터 상업성을 띄고 발생한 그 동네는 우리 동네와는 달리 여러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빠르게 발전하였으나 애초에 한 마을이 구성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곳이 아니었던 데다가 개발제한에 묶이면서 일찌감치 한계까지 팽창을 마치고 고착되는 성향을 보여줬다.

여기까지가 두 동네가 90년대 중반까지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1995년 행정구역 도농통합 정책이 한창이던 그 때 어쩐 일인지 옆 동네의 개발제한 구역이 풀려버렸다. 아마도 주변 마을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주 인구밀도가 높았던 지역의 특수성이 감안되었으리라 본다. 물론 다 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규제가 풀리기 이전의 마을 크기의 약 2배 정도 되는 구역의 규제가 풀렸고, 그 곳의 논과 땅은 불과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모두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쌓였던 분이라도 푸는지 삽시간에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기존의 건물들도 새로 들어서는 건물의 영향인지 대대적인 증·개축이 행해져 마을은 온통 공사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마을의 공사가 대부분 그렇듯, 계획없는 무분별한 마구잡이 공사로 인해 마을의 지도는 매우 복잡하게 바뀌었다. 비효율적인 공사로 인해 낭비되는 구역도 많았고, 길 또한 중구난방으로 나게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이 변하는 모습은 적어도 내 눈에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반면 우리동네는 그때나 지금이나 규제구역이 전혀 풀리지 않고 있어서 양적인 측면으로의 팽창은 없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수십년전부터 이 동네에 살고 있던 사람들인지라 토지 구역도 대부분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길도 예전부터 있던 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건물의 증-개축은 어느정도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동네 자체의 모습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옆동네의 규제가 풀릴 때, 우리 동네에서도 일정부분 규제를 풀어달라고 마을 회의를 통하여 시에 청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는 규제에 관해서는 요지부동이었고, 대신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던 마을 진입로를 아스팔트로 포장하면서 직선화 공사를 해 주었다. 주민들은 어느정도 불만이 있었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의 결정을 환영하게 되었다.

대학교가 있는 곳에는 학교의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2가지의 상권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식"에 관한 상권이고, 다른 하나는 "주"에 관한 상권이다. 애초에 "주"를 농업 가정에서 부업 형태로 발전시켜 온 우리 동네와는 달리 새로운 상권이 발생한 옆 동네는 "식"과 "주"의 상권이 혼합형태로 이루어지며 발전하였다. "식" 상권은 필연적으로 일정 이상의 소음을 발생시키게 되고, 이것은 "주"의 상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게 되는데, 마을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던 때는 이 소음의 강도가 약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규제 완화로 상권이 확대되자 "식"과 "주"의 발전 비율은 비슷하게 올라갔고, "식"의 범위가 넓어지자 마을 자체의 소음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에 개발 초기에는 "식"에 접근하기 좋은 "주"의 가치가 상승하여 임대료가 크게 상승하는 효과를 보여줬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라는 이유로 인하여 "주"의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 마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옆 동네의 가치 변화로 인한 상대적 가치 상승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서 옆 동네의 임대업은 커다란 2연타를 맞고 완전히 침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중 한 건은 대학측에서 행하였는데, 바로 여자기숙사를 신축한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IMF.

옆동네의 규제 완화 이후 대거 들어온 외지인들은 대부분 큰 건물을 하나 짓고, 아래쪽에는 상가를 운영하고 위쪽에는 임대업을 하는 식으로 운영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주"의 가치가 하락하자 건물 전체의 운영이 어려워진 주인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IMF 이후 대학생들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남아있던 상가마저도 어려움을 겪게 되고, 다시 마을을 떠나게 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때까지는 내가 집에 살면서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있었지만, 20세 이후 집을 떠나면서 직접 접하지 못하여 자세한 상황을 알 지는 못한다. 다만 아직까지도 규제가 풀리지 않은 우리 동네는 우리집이 임대업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는 잘 모르지만 학교측의 기숙사 신축(2007년)에도 불구하고 적정 수준의 임대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다만 옆 동네의 경우 임대업은 크게 위축된 상태이고 상가를 운영하거나 혹은 임대업을 하면서 다른 직장을 찾아 출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듣고 있다.


뜬금없이 이런 시시콜콜한 마을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오래된 미래를 읽으면서 줄곧 우리 동네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동네는 라다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문명화된 곳이다.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이미 서구화되어 있고 작가가 책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는 성장, 개발이라는 단어에 친숙하고, 또한 그것을 대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다만 나는 내가 겪었던 두 마을의 성격을 갈라버리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던 개발제한구역 해제라는 상황이 라다크가 겪었던 외부 문물과의 조우라는 상황과 맞물려서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글을 적게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 마을 사람들의 변화랄까, 90년대 후반 일련의 일들을 겪게 된 후 마을 사람들의 인식에 약간이나마 변화가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우선적으로 90년대 초중반 마을 회의를 통하여 그렇게나 시에 요구했었던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것을 주장하던 분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시던 분들이 많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마을의 세대교체가 진행될 수록 저런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의 직업은 농업이 아니라 2~3차 산업 종사자인 것도 그냥 웃어넘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면 시에서 구상했던 마을을 관통하는 신선 2차선 도로 계획을 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백지화시켜 버렸다. 이는 90년대 초반에 도로 건설시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며 찬성하던 마을 주민들의 생각을 완전 뒤엎어버린 얘기라 여러모로 의아했지만 이 후 마을회의의 결정이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고 하니 마을 주민이 아니게 된 지 10년이 다되가는 나도 반가울 따름이다. 다만 수정안으로 현재 마을에 있는 도로를 확포장하는 것을 시에 건의하였다고 한다.

비록 그 임대업의 흥망성쇠라는 고상하지 않은, 심히 현실적인 사건으로 인하였지만, 개발 위주의 발전을 바랬던 우리 마을 사람들의 인식은 옆 동네의 개발 후유증을 직접 접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나 또한 마을과 주변 풍경이 적절히 어우러져 있던,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친구가 살던 옆 동네의 풍경이 아직도 머리속에서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제 그런 풍경은 찾을 수 없고, 정비된 도로 하나, 나무 한 그루 없는 살풍경한 마을의 모습만이 옛 추억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다.

2008/12/02 09:05 2008/12/02 09:05
nisesana
Landfill/outside 2008/12/0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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